베트남은 어떻게 한자문화권에서 멀어지게 되었나

이미지
흔히 한자문화권이라 하면 중국대륙과 대만을 비롯한 한중일 3국을 말합니다.  그러나 동남아시아에서도 한자를 사용했던 나라가 있었으니 베트남입니다.  유일하게 동남아시아에서 한자 문화권(유교 문화권)에 속했던 나라인 베트남은 과거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자를 국가의 공식문자로 사용했습니다. 한자가 언제 어떻게 베트남에 뿌리를 내렸으며 국가공문서와 과거시험에서 어떻게 쓰였는지 그리고 왜 라틴 알파벳 형태의 현재 문자(Chữ Quốc ngữ)로 전면 교체하게 되었는지와 현대 베트남어 속에 남아 있는 한자의 흔적을 살펴봅니다. Hue, Vietnam 1. 베트남에 한자가 전래된 시기와 역사적 배경 베트남에 한자가 본격적으로 유입된 시기는 기원전 111년 한나라 무제가 베트남 북부의 고대 왕국인 남월(남비엣)을 정복하고 9개의 군현을 설치했던 복속기(중국 지배기)부터입니다. 천년에 걸친 한화 정책: 기원전 111년부터 서기 938년 응오꾸옌 장군이 바익당강 전투에서 승리하여 독립을 쟁취할 때까지 베트남은 무려 천년동안 중국왕조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았습니다. 유학과 관료제의 도입: 이 긴 지배기간 동안 한자와 유교사상 및 한나라식 행정제도가 베트남 지배층과 엘리트 계층에 깊숙이 이식되었습니다. 독립 이후 리 왕조, 쩐 왕조, 레 왕조 등 베트남의 독자적인 왕조들이 들어선 뒤에도 한자는 여전히 국가를 통치하는 최고의 공식문자로 군림했습니다. 2. 과거시험과 국가 공문서 속 한자의 위상 조선이나 고려가 한자를 공식문자로 삼았던 것처럼 베트남 왕조 역시 한자를 절대적인 정통문자로 취급했습니다. 과거제도와 유교 관료제 1075년 베트남 리 왕조는 수도 하노이에 문묘를 세우고 과거 시험을 실시했습니다. 관리가 되기 위해서는 사서삼경을 통째로 외우고 한시와 한문 문장을 완벽하게 구사해야 했습니다. 베트남의 지배층(사대부 계층)은 모두 한문을 자유자재로 읽고 쓰는 한문 엘리트들이었습니다. 국가 공문서와 사서의 한문 작성 왕실의 칙령, 외교문서, 호적대장, 사법 ...

인도는 식민종주국 영국을 어떻게 생각할까

이미지
1757년 플라시 전투(Battle of Plassey)부터 1947년 독립까지 약 190년 동안 영국의 가혹한 식민지배를 겪었던 인도는 식민 통치의 상흔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한국이 일본에 느끼는 감정과는 사뭇 다른 독특하고 복합적인 정서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이한 것은 영국정부가 아닌 동인도회사(The East India Company)가 1757년부터 1857년까지 100년간 지배했으며 영국이 직접 통치한 것은 1858년부터 1947년까지 입니다. 인도인들이 과거 종주국 영국에 대해 품고 있는 복잡한 감정의 실체와 독립 이후 오늘날까지 인도사회 전반에 영국이 남긴 그들의 언어, 영어가 차지하는 영향력을 알아봅니다. Taj Mahal, India 1. 인도인들이 영국에 대해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 인도인들의 대영 감정은 단순한 분노나 증오라기 보다는 역사적 비판과 실용적 수용이 뒤섞인 이중적 감정 에 가깝습니다. 영국 식민지배 기간 동안 인도 경제는 철저히 파탄 났으며 1943년 300만명 이상이 굶어 죽은 벵골 대기근과 무자비한 식민탄압(암리차르 학살 Amritsar Massacre등)은 지울 수 없는 역사적 상흔으로 남아있습니다. 영국이 인도의 부를 착취하여 본국으로 빼돌렸다는 사실에 대해 인도인들은 매우 비판적이며 이에 대한 영국의 공식적인 반성과 사과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국총리들이 유감을 표명한적은 있지만 공식사과(Formal Apology)한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일상생활 속에서 영국인이나 영국문화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이나 혐오정서는 한국의 반일감정에 비해 훨씬 덜한 편입니다. 오히려 영국유학이나 이민을 선호하고 영국 프리미어리그 축구를 즐겨 시청하고 크리켓을 열광적으로 즐기며 실용적인 측면에서는 영국과의 관계를 매우 긍정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2. 한국의 대일 감정과 인도의 대영 감정이 다른 이유 한국과 인도는 모두 제국주의 식민지배를 겪었지만 식민 통치의 방식과 독립 이후의 국가적 상황 차이로 인해 감정...

제정러시아 제국은 왜 해외식민지를 개척 안했을까

이미지
영국이나 프랑스등 서유럽 열강들이 바다를 건너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및 아시아의 해양 식민지를 개척하던 시절 해외 식민지 개척에 한발 늦은 제정 러시아는 해외 식민지 대신 육로를 통해 인접한 영토를 거침없이 병합하며 세계 최대의 대륙제국을 건설했습니다. 러시아 제국의 독특한 육상팽창 방식과 복속된 국가들 그리고 서구 열강들과의 치열했던 견제와 갈등 및 1991년 소련 해체와 함께 찾아온 거대한 독립의 과정을 알아봅니다. Russian Empire Map 1. 러시아 제국이 복속시킨 주변 국가들과 팽창방식 서유럽 국가들의 식민지 개척이 바다를 건너는 해양 제국주의 였다면 러시아의 팽창은 국경을 맞댄 주변 영토를 직접 집어삼키는 연속적 육상 제국주의 였습니다. 러시아는 16세기 모스크바 대공국 시절부터 서쪽의 유럽 발트해부터 동쪽의 태평양 연안까지 쉼 없이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복속된 주요 지역과 민족들 시베리아및 극동아시아: 16세기부터 코사크 기마대를 앞세워 우랄산맥을 넘어 광활한 시베리아 원주민 부족들을 복속시키고 청나라와의 조약을 통해 연해주와 사할린을 차지하며 태평양으로의 출구인 부동항 블라디보스토크를 건설했습니다. 중앙아시아 투르크계 국가들: 19세기에는 부하라 칸국, 히바 칸국, 코칸트 칸국등 유서깊은 이슬람 왕국들을 차례로 무력 굴복시켜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을 손에 넣었습니다. 코카서스 지역: 오스만제국과 페르시아 제국과의 전쟁을 통해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등 산악지대의 왕국들을 무력 병합했습니다. 동유럽및 발트해 연안: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분할 점령하여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폴란드 동부를 흡수했고 스웨덴과의 전쟁을 통해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과 핀란드를 자국 영토로 편입했습니다. 팽창이 가능했던 이유 러시아는 강력한 코사크 기마 군사력과 거대한 인구 동원력을 바탕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평원지대를 가로질러 진격했습니다. 바다를 건너 병력을 보낼...

스페인 늑대소년 마르코스의 실화, 동물과 인간의 진정한 교감

이미지
  [세계의 신비한 이야기]  2026.8.15. 스페인에서 어린시절을 야생에서 늑대와 같이 보냈던 노인이 사망했다는 기사가 나서 흥미로운 그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야생 동물에게 길러진 인간의 이야기는 흔히 동화나 영화속 허구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스페인남부 시에라모레나 산맥에서 7살부터 19살까지 무려 12년동안 늑대무리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남은 실존인물이 있었습니다. 인간사회의 학대와 배신을 피해 야생동물과 진정한 유대감을 나누었던 스페인의 늑대소년 마르코스 판토하( Marcos Pantoja )의 기적같은 생존기와 동물과 인간의 깊은 교감에 대한 진실을 알아봅니다. Sierra Morena Mountains 1. 일곱살 소년이 야생 산악지대에 버려진 사연 마르코스는 1946년 스페인 코르도바의 극도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계모의 심각한 학대에 시달리던 그는 7세가 되던 해 시에라모레나 산맥에서 염소를 치던 노인 목동에게 팔려가듯 맡겨졌습니다. 목동의 갑작스러운 사망: 노인 목동은 어린 마르코스에게 덫을 놓는 법과 산속에서 먹을수 있는 열매를 구별하는 기초적인 생존법을 가르쳐 주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립과 야생생활의 시작: 아무런 연고도 없이 거친 산속에 홀로 남겨진 7세 소년은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 스스로 생존해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에 처했습니다. 2. 늑대 무리와의 첫 만남과 놀라운 가족 형성 동굴 속에서 굶주림에 떨던 마르코스는 어느날 늑대 새끼들이 모여 있는 굴을 발견하고 함께 장난을 치며 잠이 들었습니다. 먹이를 물고 굴로 돌아온 어미 늑대는 낯선 인간을 보고 으르렁거리며 경계했으나 고기를 새끼들에게 나누어 준 뒤 마르코스에게도 먹잇감 고기 조각을 밀어주었습니다. 어미 늑대의 보살핌 어미 늑대는 마르코스를 자신의 새끼중 하나로 받아들였고 마르코스가 고기를 먹자 다가와 몸을 핥아주었습니다. 이후 마르코스는 늑대 무리와 함께 사...

미식축구는 왜 세계적 인기를 얻지 못할까?

이미지
  미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인 미식축구(American Football)는 유독 글로벌 스포츠 시장에서 축구나 농구에 비해 세계화의 속도가 더딘 편입니다. 미식축구가 왜 유독 미국 안에서만 독보적인 인기를 끌며 세계적 보급이 어려웠는지 그 이유와 함께 최근 NFL(미국프로 미식축구리그)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세계화 전략및 미래전망을 알아봅니다. American Football 1. 미식축구가 미국에서만 압도적으로 인기 있는 3가지 이유 미식축구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미국의 역사와 문화및 자본주의 시스템이 집약된 독특한 문화적 산물입니다. 미국적 가치관과 자본주의의 완벽한 결합 미식축구는 거친 신체충돌과 영토를 조금씩 빼앗고 지키는 땅 따먹기 식의 전략적 게임입니다. 이는 개척 시대부터 이어져 온 미국의 개척자 정신및 개인주의 그리고 정복자적 가치관과 완벽히 부합합니다. 또한 잦은 경기중단 시간은 방송 광고에 최적화된 구조를 제공하여 대규모 자본과 미디어가 결합한 최고의 상업 스포츠로 발전했습니다. 거대한 자국시장과 초고액 연봉 미국은 인구 3억 4천만 명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단일 내수경제 시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NFL은 다른 국가나 해외 시장에 진출하지 않고 오직 미국내 시장만으로도 세계에서 가장 경제적 가치가 높은 스포츠 리그로 자리 잡았습니다. 선수들과 구단주 입장에서는 굳이 해외시장을 개척하지 않아도 충분한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유소년 시스템과 학교체육의 강한 결합 미국에서는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로 이어지는 학교체육 시스템(NCAA)에 미식축구가 깊숙이 뿌리내려 있습니다. 금요일 밤의 고교 경기와 토요일의 대학경기 그리고 일요일의 NFL로 이어지는 주말 미식축구 문화는 미국인들의 삶의 일부로 작동합니다. 2. 미식축구의 세계화를 가로막는 치명적 장애물 미국 밖의 국가에서 미식축구가 보편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기 힘든 데에는 몇가지 구조적 한계가 존재합니다. 높은 장비 비용과 진입장벽: 헬멧과 어깨 보호대등 고가의 장비가 ...

북아일랜드 신페인당의 역사와 분리독립 운동의 미래

이미지
영국 연합왕국(UK)의 일원이자 오랜 인종및 종교갈등의 역사를 가진 북아일랜드에서 역사적인 정치적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로 오랜 세월 아일랜드와의 통일을 주장해온 민족주의 정당 신페인당(Sinn Féin)이 2022년 북아일랜드 제1당으로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아일랜드 고유언어인 게일어로 "우리 자신"을 뜻하는 신페인당은 과거 무장투쟁 단체였던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정치적 동반자라는 어두운 과거를 딛고 어떻게 제도권 중심 정당으로 거듭났는지 그리고 이들의 부상이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아봅니다. Belfast, Northern Ireland 1. 신페인당의 창당과 무장투쟁의 어두운 역사 신페인당의 뿌리는 1905년 아일랜드의 독립운동가 아서 그리피스(Arthur Griffith)가 창당한 동명의 정당으로 올라갑니다. 20세기초 아일랜드 독립전쟁과 영국의 분할통치 과정을 거치면서 신페인당은 아일랜드섬 전체의 완벽한 독립과 통일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북아일랜드내 개신교 친영국계(연합주의자)와 가톨릭 친아일랜드계(민족주의자) 사이의 유혈 충돌인 유혈 분쟁(The Troubles)이 가속화되면서 신페인당은 유혈사태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IRA와의 밀접한 관계 신페인당은 영국 정부와 친영국계 무장 단체에 맞서 테러와 폭력투쟁을 불사하던 무장조직 아일랜드공화국군(Irish Republican Army)의 공식적인 정치조직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로 인해 오랫동안 영국정부와 국제사회로부터 테러 집단의 동조자로 낙인찍혀 법적규제와 언론 보도 통제를 받는 등 심각한 음지정당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2. 평화협정과 제1당으로의 역사적 도약 테러와 유혈충돌의 악순환을 끊어낸 결정적 계기는 1998년 체결된 벨파스트 평화협정(굿 프라이데이 협정)이었습니다. 제리 애덤스와 마틴 맥기네스등 신페인당의 핵심 지도자들은 무장 투쟁의 한계를 인정하고 폭력을 포기하는 대신 선거와 의회정치를 통한 평화적 통일 운동으로 ...

말레이시아 부미푸트라 정책 - 인종차별 아닌가?

이미지
  동남아시아의 다인종국가 말레이시아에는 전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매우 독특하고 파격적인 제도가 존재합니다. 바로 자국내 특정 인종에게만 압도적인 특혜를 부여하는 부미푸트라( Bumiputera) 정책 입니다. 영국 식민 지배의 상흔에서 출발하여 국가 발전의 핵심축이 되었으나 동시에 심각한 인종간 갈등과 인재 유출을 야기하고 있는 부미푸트라 정책의 탄생배경과 구체적인 혜택내용 그리고 이 정책이 가져온 사회적 파장을 알아봅니다. 1. 부미푸트라 뜻과 정책의 탄생배경 부미푸트라는 말레이어로 땅의 자식들  또는 토착민을 의미합니다. 말레이시아 전체 인구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말레이계와 기타 소수 원주민들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이 정책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계기는 1969년에 발생한 비극적인 인종 폭동이었습니다. 1969년 5월 13일 인종폭동 발생 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은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중국계 화교들을 들여와 상권과 유통업을 맡겼고 말레이인들은 주로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게 만들었습니다. 독립 이후에도 경제권의 대부분은 부지런하고 상술이 뛰어난 화교들이 독점했고 말레이인들은 자국 땅에서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불평등과 불만이 폭발하면서 1969년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말레이인들과 화교들 사이에 대규모 유혈 충돌인 5.13 유혈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이 폭동으로 수백명이 사망하자 말레이시아 정부는 말레이인들의 경제적 지위를 강제로 끌어올리지 않으면 국가의 존립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신경제정책(NEP)이라는 이름으로 부미푸트라 우대정책을 전격 시행했습니다. Kuala Lumpur, Malaysia 2. 말레이인들에게 제공되는 파격적인 특혜내용 부미푸트라 정책은 단순히 빈곤층을 돕는 수준을 넘어 사회전체의 기득권을 말레이계에게 제도적으로 할당하는 방식으로 운용되었습니다. 공무원및 대학 입학정원 할당: 공공기관 공무원 채용시 말레이계 비율을 절대적으로 높게 설정했습니다. 또한 국립대학교 입학정원과 정부장학생 선발에...

죽음의 계곡 Darien Gap

이미지
죽음의 길이라 불리는 다리엔 갭 어디에 있나 북미대륙의 알래스카에서 시작하여 남미대륙의 최남단 칠레까지 이어지는 길이 3만km에 달하는 세계 최장의 도로가 있습니다. 바로 팬아메리칸 하이웨이(Pan-American Highway)입니다. 그러나 거대한 대륙을 연결하는 이 도로중 유일하게 끊겨 있는 100km 남짓의 구간이 존재합니다. 바로 콜롬비아와 파나마 국경 지대에 위치한 거대한 밀림지대 다리엔 갭(Darien Gap) 입니다. 이 죽음의 밀림을 오늘도 걷는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오로지 미국 국경을 넘는 것입니다. 그들의 출신지는 참으로 다양한데 남미의 Venezuela, Haiti, Colombia, Ecuador, 아프리카의 Cameroon, Senegal, Somalia 그리고 최근엔 엄청난 수의 중국인들까지 가세 했습니다. 중국인들의 경우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남미의 Ecuador에 입국한후 기나긴 육로 이동을 한다고 합니다. 지구상의 마지막 오지이자 오늘날 수십만 명의 이주민들이 목숨을 걸고 지나가는 지옥의 구간 다리엔 갭의 지리적 특징과 도로가 끊긴 이유 그리고 왜 이곳이 죽음의 길이라 불리는지 알아봅니다. Colombian Jungle 1. 도로가 끊어진 단 하나의 구간 다리엔 갭의 지리적 환경 다리엔 갭은 파나마 남부와 콜롬비아 북서부 국경 지역에 걸쳐 있는 거대한 정글과 늪지대입니다. 지리적 미개척지: 거친 산악지형과 끝없이 펼쳐진 진흙 늪지 및 빽빽한 열대우림이 엉켜 있어 인간의 접근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 천연의 장벽입니다. 도로 연결의 실패: 북미와 남미대륙 전체를 연결하는 도로를 부설하는데 실패하여 차로 이동할 수 없게 만드는 유일한 차단 구간입니다. 1970년대부터 미국과 파나마 및 콜롬비아 정부가 이곳에 도로를 건설하려는 시도를 여러번 했습니다만 거친 자연환경의 장벽과 천문학적인 예산문제 및 환경파괴 우려로 인해 결국 고속도로 건설 프로젝트는 완전히 중단되었습니다. 또한 남아메리카에만 존재하는 광견병이나 광우병 및 광...

강제로 독립을 당한 싱가포르의 건국비화와 기적

이미지
  [세계의 영토 변천사] 오늘날 싱가포르는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최상위권에 달하는 동남아시아 최고의 경제및 금융 강국입니다. 하지만 이 화려한 도시국가의 출발점이 자발적인 독립이 아니라 이웃나라 말레이시아 로부터 쫓겨나듯 당한 강제축출 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자원도 없고 먹을 물조차 부족했던 조그만 섬나라 싱가포르가 어떻게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쫓겨나 홀로서기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기적적인 성장을 이루어냈는지 알아봅니다. Marina Bay Sands Hotel, Singapore  1.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 연방에 합류했던 이유 1950년대 후반 영국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려던 싱가포르에게 홀로서기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싱가포르는 천연자원이 전혀 없었고 심지어 마실 물조차 말레이반도 본토에 의존해야 하는 지극히 취약한 상태였습니다. 면적도 서울 크기에 불과한 작은 섬이었기에 홀로 독립했다가는 인근 강대국들에게 지배당하거나 공산화될 위험이 컸습니다. 말레이시아 연방 합류 : 1957년 독립한 말레이시아는 1963년 말레이반도의 말라야및 보르네오 섬의 자치주들과 손을 잡고 말레이시아 연방을 공식 출범시켰는데 이때까지 영국식민지였던 싱가포르도 독립후 홀로서기할 능력이 안되었기에 싱가포르의 리콴유 총리는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생존을 위해 연방에 합류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합류의 목적: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라는 거대한 배후 시장을 얻어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고자 했습니다. 2. 갈등의 시작 인종 문제와 정치적 대립 그러나 말레이시아 연방합류 직후부터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중앙정부 사이에 치명적인 갈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인종 구성과 정치적 기득권 다툼 이었습니다. 말레이인 우선주의 대 다인종 평등주의 말레이시아 중앙정부는 원주민인 말레이인들에게 특혜를 주는 말레이인 우선주의(부미푸트라 Bumiputra 정책)를 강하게 추진했습니다. 반면 싱가포르는 인...

영국 식민지 될뻔했던 거문도

이미지
  하마터면 영국 땅이 될 뻔했던 거문도 점령 사건과 비화 전라남도 여수와 제주도 사이에 위치한 작고 아름다운 섬 거문도는 19세기말 세계적인 강대국들의 대결의 무대였습니다. 1885년 4월 영국 해군이 아무런 사전 통보 없이 거문도를 무력 점령하여 마음대로 포트 해밀턴(Port Hamilton)이라 부르며 2년 동안 섬을 요새화했습니다. 조선 조정의 허가도 없이 벌어진 이 초유의 점령 사건은 어떻게 일어났으며 당시 거문도 섬 주민들과 영국군 사이에는 어떤 기이하고 흥미로운 얘기들이 존재했는지 한번 알아봅니다. 거문도 1. 영국의 거문도 불법 점령 과정과 배경 영국이 멀고 먼 동아시아의 작은 섬 거문도를 점령한 이유는 중앙아시아에서 펼쳐지던 영국과 러시아의 패권 다툼인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 때문이었습니다. 1885년초 아프기니스탄 접경 지대에서 영국군과 러시아군이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양국 사이에는 당장이라도 전면전이 터질 듯한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러시아의 부동항 확보 견제: 부동항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오려던 러시아 동양함대의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영국은 동아시아 최고의 군사적 요충지인 거문도를 주목했습니다. 압도적인 정박 여건: 거문도는 세 개의 섬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외해의 파도를 막아주고 수심이 깊어 대형 군함들이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는 천혜의 항구였습니다. 기습 점령: 1885년 4월 15일 영국 해군 함대 6척과 상선 2척이 거문도에 기습 입항하여 영국 국기를 게양하고 포대와 병영을 설치했습니다. 조선 조정은 정작 사건이 터지고 한 달이나 지나서야 점령 사실을 알게 되었을 만큼 무기력한 상황이었습니다. 2. 거문도에 도입된 최첨단 문물과 요새화 거문도를 점령한 영국군은 이곳을 단순한 임시 거점이 아니라 영구적인 군사기지로 만들기 위해 섬 전체를 신속하게 요새화했습니다.  당시 영국군 주둔 인원은 적게는 200명에서 많게는 800명에 달했고 군함도 10여척이 항시 정박해 있었습니다. 해저케이블...